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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책 - 변신

변신

저자
프란츠 카프카
역자
이재황
출판사
문학동네


이제는 내가 이해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맘에 책장 한켠에 10년넘게 꼽혀있는 샤르트르의 "존재와 무"를 집어 들어본다. 그러나 웬걸, 어쩌면 "존재와 무"를 읽지 못하는 건 나의 이해력에 문제가 아니라 원래 고도의 사고력을 지닌 사람이라도 전공자가 아닌 이상 이해하지 못하게 할 목적으로 쓰여진 책이고, 정작 읽을 엄두도 못내는 건 검은 색은 글씨고 흰색은 종이이니 단순히 나의 끊기가 부족해 생기는 문제일지도 모르겠다.

이런게 인문서적의 또 다른 재미일지도..

그래서, 다시 집어든 책이 카프카의 "변신"이다. 실존주의의 가장 대표적인 소설이고 무엇보다 그 유명한 카프카 아닌가. 아직까지 카프카를 읽어보지 못했다니.

하여튼, 실존주의 같은 거창한 수식을 떠나서 카프카의 "변신"은 참으로 독특한 소설이다. 자고 일어나니 벌레가 되어 있다는 설정도 독특하지만 그보다 그러한 설정에서 그가 보여주는 차분한 묘사가 더욱 독특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벌레가 됐다해서 황당해하거나 일대 해프닝이 일어나기 보다 아주 침착하게(내가 보기엔) 대응하는 잠자씨네 가족들..

소설의 묘사는 너무나 현실적이기에 독자역시 그레고르가 벌레가 됐다는 현실감을 느끼기 힘들다. 그레고르는 실직을 했기에 벌래가 됐던지 (소설의 처음시작과는 배치되지만), 너무 열심히 일해서 일벌레가 됐던지, 사람이 되기 위해 벌레가 됐다는 도식을 가져다 놓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결국 벌레로 생을 마감하는 그레고르, 그리고 잠자씨 가족은 아들(동생에겐 오빠)가 죽고서야 생활의 활기를 찾는다. 도무지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잘됐다고 해야할지 잘못됐다고 해야할지..

벌레로의 변신에 대한 무수한 해석은 단편적 상황만을 설명할 수 있을 뿐 총체적 소설의 의도를 설명하지 못한다.

"실존은 존재에 앞선다"는 샤르트르의 명언처럼 20세기 셀러리맨으로서 그레고르는 실존에 뒤쳐질 수밖에 없는 껍데기와 같은 존재였던가? 근데, 실존이 뭐고 존재가 뭐지?? "존재와 무"를 읽긴 해야하겠는데..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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