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를 부탁해
저 자 : 신경숙
출판사 : 창 비
"엄마를 부탁해"가 미국에서 출간됐다는 소식에 국내에서도 다시 인기를 끌고 있다. 나는 그 수해자라 하겠다.
신경숙 책은 90년대에 꽤 읽었었다. "풍금이 있던 자리", "깊은 슬픔", "외딴방", '깊은 숨을 쉴 때마다' 등..
그런데, 신경숙은 스토리가 재미있는 글을 쓰는 사람이 아니다. 문체가 독특하고 아름다웠다. 소설이란 무릇 과거 시제로 쓰여지던 시기에 신경숙은 현재 시제로 글을 써나갔다. 마치 주인공 옆에서 내가 투명인간처럼 지켜보는 느낌이었다. (기억이 맞는지 모르겠다)
신경숙의 소설은 대단했고 그 이후의 여류 작가들은 조금씩은 신경숙의 후광에 빚을 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공지영, 은희경, 전경린..이름들이 생각이 안난다. 하여튼 90년대 여류 작가들의 전성시대를 신경숙이 열었다. 그리고 독자들은 새로운 여류 작가들을 탐닉했다.
하여튼, 당시에 나는 소설을 읽다가 문뜩 차라리 시집을 읽는게 좋겠다는 생각도 했었다. 시집의 문체가 더 아름답지 않겠나. 그래서 실제로도 시집을 읽어봤다.
그러면서, 우리나라 소설은 조금씩 멀어졌었다. 신경숙의 책은 더 이상 새롭지 않았다. 서사가 약하고 문체가 아름다운 신경숙의 책은 국내용일 뿐이다. 근데, 미국에서 출간되서 극찬을 받는다니..안 읽어 볼 수 없었다.
큰 줄거리는 어머니를 지하철에서 일어버리고 어머니를 찾으면서 과거의 에피소드를 풀어내는 이야기이다. 독특한 점은 어머니의 시점에서 이야기를 풀어간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자의 목소리는 "엄마"가 아닌 "너"이다. 제목에서도 '엄마를 부탁해'는 엄마가 하는 소리가 아닌게 자명하다. 글도 읽지 못하는 엄마가 이런 글을 풀어내는 건 상상도 안된다.
그렇다면, 굳이 시점을 "엄마"로 한 이유는 뭘까? "너"는 소설 전체에 관여하지 못한다. 왜냐하는 엄마만 다른 가족간에만 알고 있는 사실들이 있고 그러한 이야기를 풀기 위해서 "너"는 "나"가 될 수 없다. "너"가 "나"가 된다면 이야기의 상당부분은 기술하지 못할 것이다. 그렇다면 전지적 작가 시점에서 글을 써야 하는데, 그랬을 때는 독자의 시점이 자연히 멀어지고 객관적이 된다. 따라서, 문장의 시점과 실질적 화자가 불일치함에도 불구하고 엄마의 시점을 택했지 싶다.
부가적으로 신경숙이 이런 시도를 하다니 하는 신선함도 있다.
마지막 로마의 피에타상을 찾아가는 에필로그는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것 같다.
에필로그 전에 4장에서 엄마가 죽음에 이르면서 모든 기억을 잊고 엄마의 엄마에게 안기는 장면이 너무나 슬프고 아름다웠는데, 그 감동이 희석되는 느낌이다. 엄마에게도 엄마가 필요하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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